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가 마스터 시스템 (문단 편집) == 상세 == 비슷한 시기에 [[닌텐도]] [[패미컴]]과 경쟁했다. 성능 자체는 2년 가량 늦게 나온 만큼 [[패미컴]]보다 우위에 있으나[* AVGN 록키 편에서 게임은 깠지만, 그래픽은 대단하다며 놀라기도 했다.], 서드 파티 영입 면에서 밀리면서 사실상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일부 타사에서 만든 게임 이식도 [[세가]]에서 했는데, 이 게임기용으로 나온 타사 게임 이식판은 타이틀 화면에 'Reprogrammed Game (년도) SEGA'라고 적힌 것들이 많다. 다만, 실제로는 이식 작업을 하청한 회사가 따로 있는 경우도 제법 있다.] 당시의 [[세가]]는 현금 장사이던 아케이드 시장이 주력이었고, 가정용 게임기 사업은 어디까지나 부업 취급이었다. 그래서 서드 파티 영입에도 [[닌텐도]]만큼 적극적이지 않았고, 게임기 경쟁에도 그다지 열의가 없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타사에서 자발적으로 세가에 게임 이식과 관련된 계약을 상담하러 찾아가면 담당자가 시큰둥했더라는 증언이 있을 정도. 여기엔 당시에 게임 라인업을 가능한 세가 자신들의 손으로 채운다는 이상하고 미련한 원칙과 함께 가정용 게임기 사업부를 깔본 아케이드 사업부의 영향도 있었다는 얘기가 있다.[* 한참 아케이드 사업이 활황이던 시절엔 아케이드 사업부에서 가정용 게임기 사업부로 옮겨가면 '''좌천'''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한다.] 아무튼 [[메가 드라이브]] 이전의 세가의 가정용 게임기 사업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괴이한 행태를 벌이고 있었다. 또한, 이는 [[닌텐도]]의 탓도 있었는데, 당시 [[닌텐도]]는 [[아타리 쇼크]]의 원인을 저질 게임들의 범람으로 보고, 이를 규제하겠다는 미명 하에 서드파티 게임 회사들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 때 2년간 다른 게임기에 내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1990년]]까지 [[닌텐도]]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그 어떤 서드파티 회사들도 [[닌텐도]]가 두려워 감히 다른 [[게임기]]에 게임을 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 정책은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에서 [[닌텐도]]에 대한 반독점 조사가 들어가기 시작한 이후인 [[1990년]]이나 되어서야 철회했는데, 이때는 [[미국]]에서 [[세가 제네시스]]가 나온 이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